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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왕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덧글 0 | 조회 101 | 2021-04-14 14:38:56
서동연  
나는 조선 왕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이름 없는 여인의 넋이다. 이 세상에서나를 특정하는 유일한 기호는 아버지의 핏줄을드러내는 장이라는 성씨와 훌륭한 아들을 기려 나라에서내린 정부인이란 봉작뿐이다. 그나마 그 둘을 결합해서야 겨우 딸이거나 며느리 또는 할머니라는 여인 보편의 이름에서 나를 특정해 낼 수 있다.학문이 무르익고 나이가 차자 원그느이 제자들이모여든어 문하를 이루었다. 이 아이는 특히 예학에밝아 의문이나 제도의 급급함을 물리치고 고의를 지키면서도 시의에 맞는 새로운 예론을 세워 칭송을 들었다. 또 관방과 군무에도 남다른 식견을 가져 임진병자 양란 때 탄금대와 남한산성에서 패한 까닭을 명쾌하게 지적하기도 하였다.군자의 자리매김을 두고 한 내 여러날의 고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남편에게 순종함은 우리시대의 철칙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내 행동 원리가 되기를 바랐다. 강요에 따른 굴종이 아니라 스스로 한 선택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군자의 딴이름은 실기에서 이른바 귀한 손님이었다.이 시는 일흔 셋에 지은 것을 드물다를 아홉번이나반복하여 희시 같은데 있으되 나의 그득함과 흐뭇함을 드러내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돌이켜보아도그때가 실로 내 삶에서 가잘 환하고 넉넉한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공이 그 같은 시를 보시고 감탄하여 맹자의 오륜설을 손수 써서 내리시며 면학을 격려하셨다.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꺼기되 가져갈 생각 말며 부디상치 말게 간수하여 쉬 떨어버리지(떨어지게 만들지)말라.그대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인데 이제 다행히 서로보게 되었구나. 내 사위 송군 준길리 이곳에거 거자(과거 보는 선비)의 글을 익힉 있으니 그대도 여기머물면서 내 사위와 교유해 봄이 어떤가?촉한의 봉추(방통)는 낙봉파란 땅 이름을 듣고 자신이 죽을 곳을 알아 않았습니까. 내 들으니 두실동에 대명동이란 동네가 있다고 합니다. 거기라면숭정처사가 살아도 욕되지 않은 땅이 아닐는지요.사람이 근본을 잊지 않음도 그와 같다. 우리 선조의 훌륭한 자취와
조선 중기 이후 영남의 학맥이 대개 그러하듯 아버님의 학맥도 도산 이부자(이퇴계를 높여 부르는 말)로 발원한다. 부자의 수많은 문도 중에 팔고제라하여특히 높이는 여덟 분이 있는데 누가 적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후세에 영향을 미친 학통으로 따지면 대개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한강 정구 네 분을 손꼽을 수 있을 듯하다.옛부터 일흔까지 사는 일은 드물다 했는데무릇 주인됨이란 어떤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한다는 뜻이지만 그 주인됨을 누리기 위해서는 마땅히하여야 할 바가 앞서 있다. 안주인도 그렇다. 안주임은 집안의 살림을 오로지하는 사람이지만 또한 그 권리는 만저 하여야 할 바를 다한 데서 온다.나는 문자를 배움과 아울러 글쓰기도 익혔다. 서^36^예는 학문과는 달리 아녀자에게도 장려되는 교양이어서 나는 일찍부터 두터운 바탕을 이룰 수 있었다.어미되어 자식의 공과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 시절 현일의 정치적인 입장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도 있을 듯 싶다. 그 아이도 남인 일반처럼군존신비, 곧 군주의 절대권을 인정하였으나 이상으로 삼은 것은 군신조화론이었다. 대청 정책에서는 남인의 대표적인 북벌론자였고 예론에서는 자최삼년설의 지지자였다.이에 정조대왕은 비단으로 포장을 대신했다고 한다.나는 일찍이 성취가 있었던 학문과 재^36^예를 스스로 버리고 부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부녀의 길에서 가장 큰 것은 어머니의 길이고 그 성취는 자식으로 드러난다.셋째는 평생 서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그래도가장 왕성했던 면학의 시기는 두 번째 과거에 실패하고 난 스무두살 때부터 십여 년이 될 것이다. 현일은한때 학사 김응조를 만나 학문적으로 영향을 받기도했지만 배움의 근간은 아무래도 가학이라는 편이 옳다. 현일은 둘째 휘일과 여러 아우들을 데리고 산사와 산방, 초당을 돌면서 면학에 전념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형제간의 교학상장을 후한의 학자 정연의고사에 비기기도 했다.그밖에 공동체를 위한 산아 제한의 대의가 증폭되어 개인의 신념으로 전화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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